정치권과 거리뒀던 이재오, 강의·지역구 활동 슬슬
귀국 후 팬클럽 회원들과 등산, 지역구 ‘표밭 가꾸기’
‘왕의 남자’가 움직이고 있다. 정치권과 거리를 둔 정중동 행보가 동중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 이재오 전 의원은 지역구 활동과 강의, 집필이라는 틀에 박혔던 일상을 깨고 서서히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귀국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데다 당직 인선 등에서 친이재오계의 영향력이 거듭 확인되면서 정가에서도 그의 복귀가 멀지 않았다는 말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쇄신 문제를 두고 좌충우돌하고 있는 친이계가 ‘구심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전 의원의 복귀를 서두르게 하는 요소다. 몸 풀기를 끝내고 다시 출발선에 선 이 전 의원.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이 전 의원이 언제 어떻게 수면 위로 박차 오르느냐에 집중되고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이 은인자중을 벗어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귀국 후 “당분간 무악재를 넘지 않고 한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근 지역구 활동과 발언 등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 시선을 모으고 있다.
칩거 끝내가는 이재오
여의도 복귀 초읽기
이 전 의원은 6·10 민주화운동을 기념해 지역관계 30여 명과 태백산 야간 산행을 했다. 이어 팬클럽 ‘JOY’ 회원 1000여 명과 속리산 산행에 나섰다. 귀국 후 처음으로 팬클럽 회원들과 첫 모임을 갖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은 “속리산은 예로부터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하려고 많은 의병과 지사들이 모여 정기를 받았던 곳으로, 지역으로 돌아가 JOY 회원들에게 JOY 정신을 알려 달라”고 말했다.
또한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마지막까지 초지일관으로 한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세 결집과 더불어 쇄신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한나라당의 상황과 연결, ‘역할론’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그의 복귀가 ‘곧’ 있을 것으로 보고 향후 그의 ‘역할’을 가늠하느라 부산하다.
이 전 의원이 무악재를 넘거나 한강을 건너는 신호탄은 출판기념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귀국 후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강의와 집필활동에 매진했다. 강단과 지역구 사무실을 오가며 <나의 꿈, 조국의 꿈>이라는 책에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동북아 구상을 옮겨 담았다.
그러나 이후 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계획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 중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재보선 출마다.
이 전 의원이 원외 당협위원장으로 있는 서울 은평을은 그의 오랜 지역구다. 이 전 의원은 지난 15대 총선에서 은평구에 출마, 서울 48개구 중 최다득표로 당선됐다. 또한 16대, 17대 국회에서도 그는 재선과 3선에 성공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의 일전에서 져서 지역구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곳은 그의 ‘텃밭’이자 ‘고향’이다. 이 전 의원은 낙선한 후에도 지역구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밝혀왔다.
귀국 전 부인 추영례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세 번씩이나 국회의원을 당선시켜주신 지역(은평을) 주민들이 너무 고마워서, 어깨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살아야 했던 지난 시절도 이젠 오히려 추억이 되었다”면서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었던 많은 주민분들을 우리가 18대에 떨어졌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잊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귀국 후에도 오전에는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자신의 팬클럽 JOY 회원들이 지난 4월부터 시작한 도배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첫 봉사활동을 제외하고 지난달 10일, 24일, 지난 14일 은평을에서 이뤄진 세 차례의 도배 봉사활동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지역구 의원인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당선 직후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 위기에 처해있어 재보선 가능성도 있는 곳이다. 문 대표는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전 의원은 재보선이 실시될 시 바로 출마, 지역구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현역 의원이 아니면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는 정치구조로 인해 재보선을 통한 원내 입성은 이상적인 정치 복귀 수순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조기전당대회 ‘뜨면’
원외 당대표 가능성
그러나 2심 선고 재판이 계속 연기되고 있어 은평을이 10월 재보선에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문 대표에게 공천헌금을 제공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한정씨가 대법원에서 공천헌금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아 아예 재보선이 열리지 않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재보선 지역구가 정해지는 9월까지는 시간이 남아있다. 하지만 은평을 재보선이 ‘불확실성’을 띠고 있는 만큼 원외 당 대표로 여의도를 밟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당 지도부 사퇴와 조기전당대회 개최에 대한 주장 뒤로 이 전 의원의 복귀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실제 친이계 일각에서 당 지도부 사퇴와 조기전대에 대한 주장이 나왔다. 이 중 이 전 의원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정몽준 최고위원도 조기전대 개최 시 박근혜 전 대표뿐 아니라 이 전 의원 등 ‘계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 나와서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온 ‘이재오 당권 장악 시나리오’도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보통 당 대표가 ‘원외’라는 한계를 지닐 경우 운신폭에 제한을 받아 반기지 않는 분위기지만 현재 당 대표를 맡고 있는 박희태 대표가 원외인데다 이 전 의원의 경우 당 안팎에 세를 가지고 있어 박 대표보다 사정이 낫다는 것이다.
조기전대가 치러진다고 해도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올 가능성이 적다. 친박계에서 대신 나설 인물도 명확치 않다. 또한 세로 봐도 주류인 친이계가 친박계보다 강해 원외 당 대표로 당선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아야 할 집권 2년차에 여당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강한 원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그에게 그리 녹록치 않다. 한나라당은 물이 차오르고 있는 배와 같은 형상이다. 조기전대에서 이긴다고 해도 이후 좌초하고 있는 당과 정부를 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친박계가 조기전대 개최를 ‘이재오 정계 복귀’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로 보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조기전대에서 중요한 점이 ‘화합책’으로 거론된 만큼 이 전 의원의 이름이 전면에 거론되는 것은 그의 출마 여부와는 무관하게 친박계와의 갈등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뭉치려고 쇄신을 시작한 당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리도 없다. 굳이 ‘악수’를 자처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친박계가 이 전 의원의 복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우선 정치권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정부에서 역할을 하며 행정경험을 쌓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는 것.
그동안 한나라당의 야당이었던 만큼 이 전 의원이 내각에 입각, 국정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장관으로 내각에 들어가 국정흐름을 익히는 것도 멀리 내다봤을 때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쇄신 의지를 내비친 데다 ‘전문가 내각’에서 ‘정치인 입각 가능’으로 돌아선 것도 그에게는 호재다. 내각 개편이나 청와대 물갈이에서 정치권 인사들이 대통령의 곁에 설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장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대통령실장에 이 전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당청간 혼란이 극에 이르면서 청와대가 ‘정무적 대통령실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무장관이 신설될 경우 여의도와 청와대를 잇는 중간다리 역할도 고려 대상이다. 당청 가교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무기능 부재는 그동안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당은 쇄신안을 마련하면서 정무장관 신설에 대해 다시 한 번 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친이계 한 의원은 “당청간 소통이 잘 돼야 한다고 하는데 소통은 상당히 모호한 이야기”라면서도 “정무라인이 제대로 움직였다면 그동안 정무장관 신설이 꾸준하게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의도의 환경을 제대로 이해할 정치인이 정무장관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무장관, 대통령실장
MB 곁으로 간 ‘왕남’
일부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의 내각행과 관련, “국무총리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등 운신범위를 크게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의원 측 관계자는 “7월까지 개인일정으로 일정표가 꽉 차있다”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는 7월 이후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정치권도 “10월 재보선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나 내각 개편 등도 7월 이후 가닥이 잡힐 것”이라며 이 전 의원의 복귀 시점을 저울질했다.
일요시사(펌글)